Youtube killed 심지 [지역] 메타포로서의 인천

1990년대 동인천은 나를 키웠다.
근대화의 자취가 때에 쩌든 커튼처럼 구도심 전체를 휘둘렀지만
그 곳엔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국철 1호선의 종점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동인천에서 가장 빛나던 곳은 심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기말 퇴락해버린 동인천
동인천 대한서림은 유명한 약속 장소였다.
연주홍색 인천백화점을 마주하던 대한서림은 인현동 한 호프집에서 화재가 있기 전까지,
정말이지, 인천 구도심의 중심이었다.

인천 구도심에는 자유공원이 높았고 그 아래 삼치골목이 유명하였으며 양키시장이 숨어있었다.
또한 국내 최초의 단관 극장과 연극으로 유명한 소극장 그리고 후라는 성을 가진 소녀가 살던 중국인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인천의 백스테이지, 심지가 있었다.

Youtube killed 심지
동인천 맥도날드 건물 맞은 편, 하나은행이 입주해있는 건물 위층이 아마도 심지 였을 거다.
15년 가까이 지났으니 이제 위치조차 가물하다.

그 곳 심지에서는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유튜브에서 검색해 개인적 멀티미디어 디바이스로 소비하는 뮤직비디오가 아닌,
말 그대로 영사기를 통해 보는 뮤비 상영관.

3층과 4층으로 이루어진(4, 층과 5층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에서는 당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세계의 락을 신청하는 대로 틀어주었다.
(물론 세계의 락이라고 해봤자, 월드뮤직이 아닌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스웨덴 정도의 팝락)

요금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입구에서 도장 찍힌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 넘겨주고
어두운 실내로 입장하면 한참 후 신청한 곡과 영상이 나왔다.

2개층으로 이루어진 심지에서 3층은 소프트, 4층은 하드한 음악 성향을 주로 상영했데
당시 4층은 가보지 않아 분위기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디제이의 목소리와 영어권 음악 세 곡당 한번씩 나오던 엑스재팬, 루나씨, 글로브.

열반을 맛보다
나는 Nevermind로 너바나를 만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시애틀 그런지를 자살로 마감시킨 장본인의 일화도 모르고 죽어라 음악만 들었다.

이를테면, 너바나의 이슈와 후광 효과를 접하지 않고
음악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반해버렸다고 할까?

장황하게 설명하자.
유치하게도 고등학교 다닐 때에 그런 랭킹이 있었다.
학교에서 음반이 제일 많은 놈 등.

고등학교 때 같이 다니던 친구가 몇 있었는데, 한 놈은 갈비집 아들이었고(동인천 꿀꿀네)
다른 한 놈은 뽀돌이었다(porno kid). 그 둘은 서로 교류가 없었지만 나는 개별적으로 그 둘과 친했다.

당시 락 음반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아이 1위는 뽀돌이었고, 2위는 갈비집 아들이었다.
이 둘을 친구로 두었던 나는 96년도에 RATM의 불타는 승려에 경악했고
시대를 앞서간 앤쓰랙스의 굉굉거리는 기타음을 들으며 졸았다.

그 중 한 친구가(아마도 뽀돌이었던 것 같다) 내게 In Utero 앨범을 전해주었는데,
당시 즐겨듣던 라디오헤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감수성이라기 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와 조울증과 편집증의 교차,
얼터너티브 라는 단어도 접하였고.

어찌되었든, 너무도 유명한 Smell likes teen spirit 를 듣기도 전에 너바나를 접하게 되었다.

(너바나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에 너무 걸렸다. 숨을 좀 돌리고)
고등학교 2학년 생일날 역시 심지에 갔다.
그곳에서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를 기다리는데, 한 컨츄리 가수의 언플러그드 공연 영상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다가 정말, 전율을 느껴버렸다.

컨츄리 가수가 부른 노래는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그 컨츄리 가수는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이었다.

In Utero가 아닌 언플러그드 공연으로 너바나를 처음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던 밴드의 보컬이었다는 사실은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고)

당시 교실엔 Pantera, Metalica 등, 밴드 이름을 새겨놓는 머저리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우스운 고백이지만, 나도 책상에 너바나를 새겨넣었다.

동인천 is dead
지금의 인천은 인천지하철 라인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번화하지만(최근에 주안도 죽어버렸다)
당시 나의 또래들에게 동인천은 종로였고 피마골이었다.

심지, 나의 사춘기 보물창고, 유튜브가 죽여버린 영웅.
심지가 곧 동인천, 사춘기 그리고 너바나.

잘나가는 글로벌 송도, 인천의 강남 관교동에 비하면
부끄럽고 퇴락해버린 동인천,
하지만 가장 진실했고 열정적이었던, 1979년생의 낙원.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scartissue.egloos.com/tb/4111029 [도움말]
  • 시애틀 그런지를 죽여버린 남자 2009/02/08 10:58 #

    Youtube killed 심지 지난밤 Posing을 마치고 자정 근처에 잠을 청했고 몇 차례 뒤척인 후에 지금에서야 일어났는데. 침대 위에 놓인 노트북은 팬이 막혀 달아오르고 나는 전날 몇차례 꾼 꿈을 되새기느라 어지러워. 내장이 해체된 채 얼어붙은 오징어 속에 모래가 가득했고 나는 그 가련한 시체를 손에 들고 작은 포구에 있었어. 모래 대신 조개 껍대기만 발 밑에 쌓인 죽은 항구에서 누군가를 데리러 가기 위해 ...... more

덧글

덧글 입력 영역